Sunday, June 10, 2012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을 혐오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의 숨은 목적은?

오늘 트위터에 본인 사진대신 문제의 스캔된 이매지를 올려 놓았다.

사람도 없는 장소에서 무슨이유로 한국어 대신 중국어로 소리 질러대기 시작하였나... 중국어까지 할줄 아는 자들이니 비싸겠다. 지난번에는 귀에다 대고 일본어로 고함을 질러 대었었지. -전철역에서 중국어로 귀에 소리 질러 대던 것처럼- [이들의 외모나 외국어 실력에 현혹되어서는 않된다. 사람을 해치는것을 즐기는 자들이라는것도. 본인에게 세균을 속여 먹게한 강가는 자신을 선교사로 위장하였던 공작원이다. 물론 스스로 일본어에도 능통하였다고 하였으며 XX로 활동하던 자이기도 하다.]

이자들은 애워싸고 어느쪽에서 수작을 떨지 모르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며 ... 조심 조심

갑자기 백화점 수래에 발을 들이밀어 다치는 흉내를 내는 여성뒤 한패거리의 일행이 저마다 귓속말로 일본어로 시비건다든가 -시비라기 보다는 일본인 행색을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자들의 위협이라고 하여야 할것이다.- 하는 것은 일상인 것이다. 물론 수레 어린 여자 아기를 밀어 넣으려던 여성도 있었던 것을 기억 하여야 할것이다. 현장 직원은 보고도 머리를 돌리고... 조심 또 조심... 서울 한 복판에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이다.

이런 공작원들의 행동 양식은 벨기에 브뤼셀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전에 앤트워프 식당 -앤트워프에서 죽을뻔 하였을때 -다 돈때문에 하는 짓이라고 변명하던-가 기억난다. 들통나면 어린 자식 내세워 자신의 처지를 가엽게 여겨달라는... 공작원 ... 외교관...

테르뷔른 교회 옆에서 본인의 가족을 지칭하며 피와 살을 먹겠냐고 식인종처럼 수작떨던 김우철의 뻔뻔함이 기억나는 날이다. -그리고나서는 갑자기 두여성의 사진을 보여 주더니 한여성과는 살던 여자고 다른 여자는 앞으로 결혼해서 살것이라고 다음 여자가 더 이쁘다고... 그 후 김우철은 그가 말 한대로 결혼하였다.

김우철은 원호의 말로는 -표면적으로는- 앤트워프에서 한국으로 다이아몬드를 밀수 하는 자라 하였고 참사관 정강현 -자칭KCIA- 의 하수인이다.

본인을 수차 직접 위협하던 대사 최대화는 마지막으로 본인이 교회에 간날 본인을 보고 부부가 기겁을 하고 도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인을 위협하던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였다. 교회에는 많은 그들의 -외교관들을 포함한- 범죄조직원들이 있었다. 무서워서 도주 하여야할 사람은 바로 본인이였는데도 말이다. 매우 신기한 묘한 인물이였다.

이리도 잔인하고 뻔뻔한 자들이 무슨 이유로본인이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을 혐오하게 하기 위하여 이리도 노력을 하는지. 아시는 분들은? 반기문의 외교통상부 앞에서 본인의 목을 조르며 비웃던 자들

2012.06.16 이들의 새로운 말장난 주제가 추가되었다. 다문화사회와 외국인근로자들의 소득이다. 해외공작소에서 활동하는 공작원중 한명은 그의 부인과 지하에서 본인에게 들으라며 조롱을하며 자신들이 보상?으로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한채쯤은 생길것이라고 말하던 적이 있었다. 조롱과 위협. 서울 아파트 강남 엄청난 액수일 것이다. 그런 보상?을 받는 자들이 노리는 한건... 그런 한건의

피비린내나는 탐욕에 젓은 자들의 이다. 오래전 해외에의 한 제과점 한국어를 하는 어린 아이목소리가 등뒤에서 나 돌아보니 영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아이였다.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냐 하였더니 자신이 일하는 순두부집에서 배웟다 한다. 피부색이 달라도 언어거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얼마든지 잘 지낼수 있는것

출세하겠다고 돈벌겠다고

인간들을 사냥하는 것처럼 공작의 대상으로 삼아 돈벌이 하는 이자들은

집에서 일본 경제 전문가의 경제활동인구 감소 와 경제문제에 관한 인터넷글을 보고 난후 차에서 만난 이자는 인구감소문제와 경제난을 말하다가 자기가 하던 말과 정 반대의 말을 하며 Xenophobia 외국인혐오증행세를 하는 공작원의 짓거리를 하는 것였다. 그자가 한말을 보면 그자의 의도를 알수 있다. 한국에서는 않된다고... 선동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정치선동도 충분하지 않은가 보다.

타인에게는 외국인들을 혐오하게 유도하고 자신들은 외국에가서 순두부처럼 순수?하게 세계 통일 평화를 말하고


Friday, May 11, 2012

sig


누가 무었을 위하여 한두가지도 아니고
이런것도 하는 구나... 공작

Tuesday, March 27, 2012

모의원이 출마 않해야 되느냐고 수작을 떤다.

연예계와 정치인들 에 관하여 청하지 않은 수다를 떨더니 모 정치인이 출마를 하지 않아야 된다며 동의를 구한다.

허접한 공작원들의 수작중 하나 조심하세요 시민 여러분 이상한 목적에 이상한 짓거리하는 자들을

Saturday, March 10, 2012

죽어 돌아오지 말라는 소리

에 잠을 깬다. 인간백정들의 교묘한 말장난. 소아과 여의사의 유인이 건강에 치명적이군. 처음본 부류도 아니지만. 언제나 이런 부류들이 청산될까? 저녘 산책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 않죽으 려고 한다는 말을 교묘하게 한다. 이들이 매우 즐거운가 보다. 네일 병원으로 향한다.

해외에서 스템셀 stem cell 연구에 관하여 말하는 한국인 여의사에게 잠시 방심한것이 이런 결과에 한 역활을 하였다.

시민 여러분 모두 조심하시기를.

Saturday, January 21, 2012

Torture Master Lee Keun-ahn Becomes Christian Pastor

https://www.koreatimes.co.kr/www/news/nation/nation_view.asp?newsIdx=33705&categoryCode=113

Torture Master Becomes Christian Pastor
11-01-2008 21:27
Lee Keun-ahn

A notorious former police officer, whose job during Korea’s military regime was to torture dissidents, has become a Christian pastor.

Lee Keun-ahn, 70, who was dubbed “torture engineer” for his various inhumane torture skills to extract answers from political dissidents and college students during the 1980s, was ordained as a pastor Thursday, JoongAng Ilbo reported Saturday.

“I feel like I were born again. I will live my life, fixing my eyes only on Jesus on the cross,” he told reporters after the ceremony, adding he plans to devote the rest of his life to prison mission.

One of his personal victims, Kim Geun-tae, later became a health minister during the Roh Moo-hyun administration.

When his hey day ended with the onset of democracy in South Korea, Lee went into hiding for 12 years before finally turning himself in to the police.

He was released in Novemer 2006 after serving his seven-year term.

While on the run, Lee became a Christian. He enrolled in a correspondence seminary school at prison.

Thursday, January 19, 2012

이근안에게 고문당한 한 여기자의 편지

이근안에게 고문당한 한 여기자의 편지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2/01/19/0701000000AKR20120119225300004.HTML?template=5566
(서울=연합뉴스) 페미니스트 웹진 '이프'의 공동대표 유숙열씨가 지난 17일 이프 홈페이지에 올린 '내게 팬티를 사준 남자, 이근안에게'라는 글이 화제다. 이 글에서 유씨는 합동통신 기자로 일하던 1980년 7월 17일 지명수배로 쫓기고 있던 당시 한국기자협회 김태홍 회장에 피신처를 소개해 줬다는 이유로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에게 물고문을 당했던 일을 회고했다. 사진은 유씨가 글과 함께 올린 것으로 "1980년 당시 같이 해직되어 도미하게 된 선배를 배웅하러 간 공항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고승우(80년 해직기자 협의회 대표), 정남기(전 언론재단 이사장), 이문승(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그리고 나."라고 적혀있다. << 사회부 기사 참조 >> 2012.1.19 photo@yna.co.kr
합동통신 전직기자 유숙열씨 남영동 고문경험 회고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과거 이근안에게 물고문을 당한 전직 여기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화제다.

페미니스트 웹진 '이프'의 공동대표 유숙열(59)씨는 지난 17일 '내게 팬티를 사준 남자, 이근안에게'라는 글을 이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 글에서 유씨는 합동통신 기자로 일하던 1980년 7월 17일 지명수배로 쫓기고 있던 당시 한국기자협회 김태홍 회장에 피신처를 소개해 줬다는 이유로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에게 물고문을 당했던 일을 회고했다.

유씨는 "그들은 기를 죽이려는 듯 처음에는 험악한 말로 욕설을 퍼부으며 협박을 했다가, 정중하게 '기자'대접을 했다가 또다시 뒷덜미를 잡고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쑤셔박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한참 고문을 받다가 30, 40대의 건장한 남자들 여러 명이 몽둥이를 들고 모여있는 방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이근안을 만났다.

그는 "누군가 내게 칠성판 위로 올라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다시 누군가 돌아누우라고 했고 돌아누운 내 몸 위에 버클이 주르룩 채워지며 육중한 몸집의 남자가 올라탔다"며 그가 바로 이근안이었다고 밝혔다.

유씨는 "물고문 한번 당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온몸이 물에 젖어 한여름인데도 사시나무 떨듯이 몸이 떨려왔고 담요를 여러 장 뒤집어써도 추위가 가시질 않았다"며 당시 당한 고문의 충격을 전했다.

이씨에게 고문을 당한 유씨는 고문의 쇼크로 침대에 누워 링거를 꽂게 됐는데 이때 그녀의 생리가 갑자기 터지는 난감한 일이 생겼다.

달리 방법이 없던 유씨는 이씨를 불러 "아저씨...저 생리가 터졌는데요"라고 말했고, 이씨가 생리대와 팬티를 사다 주면서 '내가 생전 여자 속옷을 사봤어야지. 가게 가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아냐'면서 호들갑스럽게 여자 팬티 사온 얘기를 동료 앞에서 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순진한 마음에 사람을 고문하는 직업을 가진 당신이 진심으로 안쓰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또 곤란한 일을 해결해준 당신에게 인간미를 느꼈는지 이씨에게 '직업을 바꾸라'고 말했다"고 했다.

유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시 고문과 수사가 종결되고 수사관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이씨에게 '간첩 잡는 일을 하더라도 왜 사람을 고문하는 일을 하느냐' 물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씨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며 "나중에 들어보니까 회사 사람들에게 내가 '유관순처럼 수사관들에게 직업을 바꾸라고 호통을 쳤다'고 말해 직장 선배들은 내가 성질을 부려서 굉장히 고생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씨는 고문자였던 이씨가 목사직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느껴 자신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기로 결심했다.

유씨는 "얼마 전 김근태씨가 돌아가시고 제가 숨겨줬던 김태홍 선배도 작년 10월에 고문 휴유증으로 돌아가셨는데 이씨는 여전히 목사직을 하고 있어 이런 글을 쓰게 됐다. 게다가 최근 한 방송 인터뷰를 봤는데 그는 사과할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씨는 홈페이지 글에서 "남들이 당신을 목사직에서 끌어내리기 전에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십시오.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청소부가 되어서 묵묵하게 자신의 죄를 씻고 또 씻으십시오. 아니면 당신이 일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경비원으로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사죄하십시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총회는 지난 14일 긴급 징계위원회를 열고 이근안씨에 대해 목사직 면직 판결을 내렸다.


bluekey@yna.co.kr



Sunday, January 15, 2012

남은곳은 아프리카라고

아프리카로나 이민가라고 말을 전한다.

자주하던 더러운 세균을 사용하겠다던 협박과 실행도 부족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