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1, 2012
Sunday, June 10, 2012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을 혐오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의 숨은 목적은?
오늘 트위터에 본인 사진대신 문제의 스캔된 이매지를 올려 놓았다.
사람도 없는 장소에서 무슨이유로 한국어 대신 중국어로 소리 질러대기 시작하였나... 중국어까지 할줄 아는 자들이니 비싸겠다. 지난번에는 귀에다 대고 일본어로 고함을 질러 대었었지. -전철역에서 중국어로 귀에 소리 질러 대던 것처럼- [이들의 외모나 외국어 실력에 현혹되어서는 않된다. 사람을 해치는것을 즐기는 자들이라는것도. 본인에게 세균을 속여 먹게한 강가는 자신을 선교사로 위장하였던 공작원이다. 물론 스스로 일본어에도 능통하였다고 하였으며 XX로 활동하던 자이기도 하다.]
이자들은 애워싸고 어느쪽에서 수작을 떨지 모르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며 ... 조심 조심
갑자기 백화점 수래에 발을 들이밀어 다치는 흉내를 내는 여성뒤 한패거리의 일행이 저마다 귓속말로 일본어로 시비건다든가 -시비라기 보다는 일본인 행색을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자들의 위협이라고 하여야 할것이다.- 하는 것은 일상인 것이다. 물론 수레 어린 여자 아기를 밀어 넣으려던 여성도 있었던 것을 기억 하여야 할것이다. 현장 직원은 보고도 머리를 돌리고... 조심 또 조심... 서울 한 복판에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이다.
이런 공작원들의 행동 양식은 벨기에 브뤼셀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전에 앤트워프 식당 -앤트워프에서 죽을뻔 하였을때 -다 돈때문에 하는 짓이라고 변명하던-가 기억난다. 들통나면 어린 자식 내세워 자신의 처지를 가엽게 여겨달라는... 공작원 ... 외교관...
테르뷔른 교회 옆에서 본인의 가족을 지칭하며 피와 살을 먹겠냐고 식인종처럼 수작떨던 김우철의 뻔뻔함이 기억나는 날이다. -그리고나서는 갑자기 두여성의 사진을 보여 주더니 한여성과는 살던 여자고 다른 여자는 앞으로 결혼해서 살것이라고 다음 여자가 더 이쁘다고... 그 후 김우철은 그가 말 한대로 결혼하였다.
김우철은 원호의 말로는 -표면적으로는- 앤트워프에서 한국으로 다이아몬드를 밀수 하는 자라 하였고 참사관 정강현 -자칭KCIA- 의 하수인이다.
본인을 수차 직접 위협하던 대사 최대화는 마지막으로 본인이 교회에 간날 본인을 보고 부부가 기겁을 하고 도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인을 위협하던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였다. 교회에는 많은 그들의 -외교관들을 포함한- 범죄조직원들이 있었다. 무서워서 도주 하여야할 사람은 바로 본인이였는데도 말이다. 매우 신기한 묘한 인물이였다.
이리도 잔인하고 뻔뻔한 자들이 무슨 이유로본인이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을 혐오하게 하기 위하여 이리도 노력을 하는지. 아시는 분들은? 반기문의 외교통상부 앞에서 본인의 목을 조르며 비웃던 자들
2012.06.16 이들의 새로운 말장난 주제가 추가되었다. 다문화사회와 외국인근로자들의 소득이다. 해외공작소에서 활동하는 공작원중 한명은 그의 부인과 지하에서 본인에게 들으라며 조롱을하며 자신들이 보상?으로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한채쯤은 생길것이라고 말하던 적이 있었다. 조롱과 위협. 서울 아파트 강남 엄청난 액수일 것이다. 그런 보상?을 받는 자들이 노리는 한건... 그런 한건의
피비린내나는 탐욕에 젓은 자들의 이다. 오래전 해외에의 한 제과점 한국어를 하는 어린 아이목소리가 등뒤에서 나 돌아보니 영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아이였다.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냐 하였더니 자신이 일하는 순두부집에서 배웟다 한다. 피부색이 달라도 언어거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얼마든지 잘 지낼수 있는것
출세하겠다고 돈벌겠다고
인간들을 사냥하는 것처럼 공작의 대상으로 삼아 돈벌이 하는 이자들은
집에서 일본 경제 전문가의 경제활동인구 감소 와 경제문제에 관한 인터넷글을 보고 난후 차에서 만난 이자는 인구감소문제와 경제난을 말하다가 자기가 하던 말과 정 반대의 말을 하며 Xenophobia 외국인혐오증행세를 하는 공작원의 짓거리를 하는 것였다. 그자가 한말을 보면 그자의 의도를 알수 있다. 한국에서는 않된다고... 선동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정치선동도 충분하지 않은가 보다.
타인에게는 외국인들을 혐오하게 유도하고 자신들은 외국에가서 순두부처럼 순수?하게 세계 통일 평화를 말하고
Saturday, May 12, 2012
Friday, May 11, 2012
Tuesday, March 27, 2012
모의원이 출마 않해야 되느냐고 수작을 떤다.
연예계와 정치인들 에 관하여 청하지 않은 수다를 떨더니 모 정치인이 출마를 하지 않아야 된다며 동의를 구한다.
허접한 공작원들의 수작중 하나 조심하세요 시민 여러분 이상한 목적에 이상한 짓거리하는 자들을
허접한 공작원들의 수작중 하나 조심하세요 시민 여러분 이상한 목적에 이상한 짓거리하는 자들을
Saturday, March 10, 2012
죽어 돌아오지 말라는 소리
에 잠을 깬다. 인간백정들의 교묘한 말장난. 소아과 여의사의 유인이 건강에 치명적이군. 처음본 부류도 아니지만. 언제나 이런 부류들이 청산될까? 저녘 산책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 않죽으 려고 한다는 말을 교묘하게 한다. 이들이 매우 즐거운가 보다. 네일 병원으로 향한다.
해외에서 스템셀 stem cell 연구에 관하여 말하는 한국인 여의사에게 잠시 방심한것이 이런 결과에 한 역활을 하였다.
시민 여러분 모두 조심하시기를.
해외에서 스템셀 stem cell 연구에 관하여 말하는 한국인 여의사에게 잠시 방심한것이 이런 결과에 한 역활을 하였다.
시민 여러분 모두 조심하시기를.
Saturday, January 21, 2012
Torture Master Lee Keun-ahn Becomes Christian Pastor
https://www.koreatimes.co.kr/www/news/nation/nation_view.asp?newsIdx=33705&categoryCode=113
Torture Master Becomes Christian Pastor
11-01-2008 21:27
Lee Keun-ahn
A notorious former police officer, whose job during Korea’s military regime was to torture dissidents, has become a Christian pastor.
Lee Keun-ahn, 70, who was dubbed “torture engineer” for his various inhumane torture skills to extract answers from political dissidents and college students during the 1980s, was ordained as a pastor Thursday, JoongAng Ilbo reported Saturday.
“I feel like I were born again. I will live my life, fixing my eyes only on Jesus on the cross,” he told reporters after the ceremony, adding he plans to devote the rest of his life to prison mission.
One of his personal victims, Kim Geun-tae, later became a health minister during the Roh Moo-hyun administration.
When his hey day ended with the onset of democracy in South Korea, Lee went into hiding for 12 years before finally turning himself in to the police.
He was released in Novemer 2006 after serving his seven-year term.
While on the run, Lee became a Christian. He enrolled in a correspondence seminary school at prison.
Torture Master Becomes Christian Pastor
11-01-2008 21:27
Lee Keun-ahn
A notorious former police officer, whose job during Korea’s military regime was to torture dissidents, has become a Christian pastor.
Lee Keun-ahn, 70, who was dubbed “torture engineer” for his various inhumane torture skills to extract answers from political dissidents and college students during the 1980s, was ordained as a pastor Thursday, JoongAng Ilbo reported Saturday.
“I feel like I were born again. I will live my life, fixing my eyes only on Jesus on the cross,” he told reporters after the ceremony, adding he plans to devote the rest of his life to prison mission.
One of his personal victims, Kim Geun-tae, later became a health minister during the Roh Moo-hyun administration.
When his hey day ended with the onset of democracy in South Korea, Lee went into hiding for 12 years before finally turning himself in to the police.
He was released in Novemer 2006 after serving his seven-year term.
While on the run, Lee became a Christian. He enrolled in a correspondence seminary school at prison.
Subscribe to:
Posts (Atom)